넷플릭스에서 《리키시》라는 제목을 처음 보면 제목 자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리키시(力士)는 일본에서 스모 선수를 뜻하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씨름 선수를 씨름선수 또는 장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본의 프로 스모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다 보면 단순히 덩치 큰 선수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스모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한국의 씨름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경기 방식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씨름은 상대를 넘어뜨리는 순간 승부가 결정되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스모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뿐 아니라 원형의 도효 밖으로 내보내는 것 역시 승리입니다.
그래서 경기 시간이 아주 짧은데도 그 짧은 몇 초 안에 밀기, 당기기, 중심 싸움, 발의 위치, 허리의 높이까지 상당히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리키시》가 흥미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 문제아 청년의 성장 이야기뿐 아니라 스모 선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훈련하는지, 계급은 어떻게 나뉘는지, 스모 도장 안에서는 어떤 문화가 존재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키시》, 원래 제목은 왜 ‘성역’일까
한국 넷플릭스 제목은 《리키시》입니다.
하지만 일본 원제는 《サンクチュアリ -聖域-》, 영어 제목은 《Sanctuary》입니다.
직역하면 ‘성역’에 가깝습니다.
이 제목을 알고 작품을 보면 드라마의 성격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주인공 오제 키요시에게 스모는 처음부터 신성한 전통문화가 아닙니다.
그에게 스모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예절도 관심 없습니다.
선배에게 반항하고, 훈련도 싫어하고, 전통적인 스모계의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그런 인물을 가장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세계 안으로 집어넣은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결국 《리키시》는 스모를 찬양하는 작품이라기보다 ‘성역이라고 불리는 세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보여주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줄거리, 돈 때문에 스모 선수가 된 문제아
주인공 오제 키요시는 후쿠오카 출신의 거칠고 반항적인 청년입니다.
집안 형편은 좋지 않고 아버지는 병원에 있으며, 키요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돈입니다.
그런 그에게 스모의 세계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체격과 힘을 눈여겨본 엔쇼 관장은 키요시를 자신의 스모 도장으로 데려옵니다.
하지만 키요시에게는 스모에 대한 존경심도, 리키시가 되겠다는 꿈도 없습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세계였습니다.
문제는 스모 도장이 단순한 스포츠 훈련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배와 후배의 위계가 존재하고,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매일 반복되는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합니다.
키요시는 이런 질서와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압도적인 힘과 싸움 감각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오제 키요시는 ‘엔오’라는 시코나, 즉 스모 선수로서 사용하는 이름을 받게 되고 본격적으로 도효 위에 올라갑니다.

승리를 거듭하면서 엔오는 점점 주목받습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방법도, 승리한 뒤의 행동도 기존 스모계가 기대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과정에서 엔오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시미즈가 등장합니다.
소메타니 쇼타가 연기한 시미즈는 스모를 좋아하지만 리키시로 성공하기에는 체격적인 한계를 가진 인물입니다.
반대로 엔오는 좋은 체격과 힘을 가졌지만 스모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의 대비가 재미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을 능력이 부족합니다.

여기에 쿠츠나 시오리가 연기한 기자 쿠니시마 아스카가 스모계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스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인물이지만 선수들과 도장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점차 이 세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엔오 앞에는 시즈우치라는 거대한 벽이 나타납니다.
시즈우치는 말이 거의 없고 표정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효 위에 올라가는 순간 존재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엔오에게 시즈우치와의 대결은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한국 씨름과 일본 스모, 무엇이 다를까
《리키시》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기 규칙입니다.
한국 씨름에 익숙한 눈으로 스모를 보면 처음에는 상당히 단순해 보입니다.
두 선수가 부딪치고 한쪽이 원 밖으로 나가면 끝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 다릅니다.
스모에서는 상대방의 발바닥 이외 신체 일부가 먼저 도효에 닿거나, 상대방이 먼저 도효 밖으로 나가면 승부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반드시 상대를 완전히 넘어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를 밀어서 밖으로 내보내는 ‘오시다시’, 강하게 밀쳐 밖으로 보내는 ‘츠키다시’ 같은 승리 방식도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를 밀어 쓰러뜨리는 방식도 존재합니다.
즉 ‘스모는 상대를 밖으로 밀어내는 경기’라고만 설명해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넘어뜨려도 이기고, 밖으로 내보내도 이깁니다.
이 점에서 한국 씨름과 경기의 공간 활용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한국 씨름에서는 샅바를 잡고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경기의 핵심적인 이미지입니다.
반면 스모에서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두 선수가 폭발적으로 충돌하는 ‘다치아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몇 초 만에 끝나는 경기도 많습니다.
그래서 《리키시》의 경기 장면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덩치 큰 사람들이 힘으로 미는 것이 아니라 발의 위치와 무게중심을 놓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밀려나면서도 도효 가장자리에서 버티고, 몸을 틀어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며 순식간에 승패를 뒤집기도 합니다.

스모에는 승리 기술이 82가지나 있다
스모를 조금 더 찾아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세계가 나타납니다.
일본스모협회는 공식적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기술인 ‘기마리테’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식 분류는 82가지입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상대를 밀어내거나 넘어뜨리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밀기와 당기기, 던지기, 다리 기술, 뒤를 잡는 기술 등 상당히 세분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상대를 밀어 도효 밖으로 보내는 오시다시가 있고, 상대의 마와시를 잡아 몰아붙인 뒤 밖으로 내보내는 요리키리가 있습니다.
상대 뒤로 돌아가 밀어내는 오쿠리다시, 상대를 들어 올려 도효 밖으로 옮기는 쓰리다시 같은 기술도 존재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 《리키시》의 경기 장면을 다시 보면 보는 맛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누가 더 힘이 센가’만 보였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중심을 빼앗았는가’를 보게 됩니다.

스모 선수들은 왜 그렇게 몸을 크게 만들까
드라마를 보다 보면 리키시들의 식사 장면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스모 선수라고 하면 거대한 체격부터 떠오르지만 단순히 살을 찌우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상대를 도효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경기에서 체중과 하체의 힘은 중요한 무기가 됩니다.
동시에 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근력과 유연성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작품 속 훈련 장면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뚱뚱한 사람들의 경기’라는 선입견이 금방 깨집니다.
그 거대한 몸으로 반복해서 시코를 밟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상대의 압력을 받아내는 과정 자체가 상당한 체력을 요구합니다.

스모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진 것이 ‘찬코나베’입니다.
큰 냄비에 육류나 생선, 채소, 두부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끓여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찬코는 특정한 하나의 조리법만을 의미한다기보다 스모 도장에서 리키시들이 먹는 음식 문화 전체와 연결되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현재 도쿄 료고쿠 일대에는 찬코나베 전문점이 많습니다.
실제 스모의 흔적을 여행으로 이어가고 싶다면 료고쿠는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점입니다.

스모 도장이라는 독특한 공동생활
《리키시》가 일반 스포츠 드라마와 조금 다른 이유는 경기보다 ‘도장 안의 생활’을 상당히 많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은 운동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훈련합니다.
계급에 따라 역할과 대우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도효에서의 경쟁뿐 아니라 도장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국 시청자에게는 이 문화가 상당히 낯설 수 있습니다.
현대 프로스포츠 선수라고 하면 개인적인 생활과 전문적인 훈련 시설을 떠올리기 쉽지만, 스모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헤야’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리키시》는 바로 이 폐쇄된 공동체 안에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인간인 엔오를 던져 넣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드라마이면서 조직 드라마처럼 보이는 순간도 많습니다.

실제 료고쿠 국기관에서 촬영했을까
작품을 보면서 놀라운 장면 가운데 하나가 대회가 열리는 거대한 경기장입니다.
당연히 도쿄의 료고쿠 국기관에서 촬영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내부 경기 장면의 상당 부분은 실제 국기관이 아니라 대규모 세트에서 촬영됐습니다.
오래된 체육관을 촬영 시설로 활용해 실제 국기관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었고, 1층 관객석을 중심으로 실제 세트를 제작했습니다.
그 위의 2층 관객석 등은 VFX로 확장했습니다.
실사와 CG의 경계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을 정도여서 작품을 보면서 실제 국기관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리키시》의 제작 규모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모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도효와 천장, 관객석, 심판과 관계자들의 위치까지 익숙한 일본 시청자에게 어설픈 공간을 보여주면 바로 이질감이 생깁니다.
제작진은 세트와 VFX를 결합해 그 공간을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실제 료고쿠를 여행한다면
드라마 속 국기관은 세트였지만 실제 스모 여행의 중심은 역시 도쿄 스미다구 료고쿠입니다.
료고쿠역 주변을 걷다 보면 스모와 관련된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료고쿠 국기관이 있습니다.
일본의 프로 스모 본대회가 열리는 대표적인 장소로, 대회 기간에는 거리 분위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주변에서는 리키시를 마주치는 일도 있고 스모 관련 음식점과 상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키시》를 본 뒤 도쿄를 여행한다면 단순한 드라마 촬영지 순례보다 ‘실제 스모의 도시’를 둘러본다는 방식이 더 재미있습니다.

료고쿠는 에도 시대부터 스모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지역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찾는 여행보다는 실제 스모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을 경험하는 여행에 더 가깝습니다.
찬코나베를 먹고, 국기관 주변을 걷고, 일정이 맞는다면 실제 대회를 관람해 보는 방식입니다.
배우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주인공 엔오를 연기한 이치노세 와타루는 이 작품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체격이 큰 배우를 데려온 느낌이 아닙니다.
거친 표정과 걸음걸이, 훈련하면서 달라지는 몸의 움직임까지 캐릭터의 성장과 연결됩니다.
제작 과정에서도 배우들이 리키시의 몸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신체 훈련과 체중 변화를 거쳤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특히 실제 전직 리키시들이 출연하면서 경기 장면의 질감이 일반적인 스포츠 드라마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시미즈 역의 소메타니 쇼타는 체격부터 엔오와 정반대입니다.
그 차이가 캐릭터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2026년에도 소메타니 쇼타는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식 사이트 기준으로 2026년 영화 《교장 Requiem》, 《폐용신》, 《칠드》, 드라마 《타구사리 브라더스》 등의 출연 소식이 이어졌고, 2026년 가을 방송 예정인 NHK 연속 TV소설 《블라섬》 출연도 발표됐습니다.
《리키시》에서 조용히 스모를 바라보던 시미즈와 이후 작품들의 폭넓은 배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쿠니시마 아스카 역은 쿠츠나 시오리가 맡았습니다.
스모계 내부 사람이 아닌 기자라는 설정 덕분에 시청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낯선 스모의 규칙과 관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엔쇼 관장을 연기한 피에르 타키, 엔쇼의 아내 하나를 연기한 코유키를 비롯해 타구치 토모로, 키시타니 고로, 마츠오 스즈키 등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익숙한 배우들도 등장합니다.
주연 몇 명만으로 끌고 가기보다 스모계 전체가 하나의 사회처럼 느껴지도록 배우층을 두껍게 만든 작품입니다.
음악은 한 명의 작곡가가 만든 일반적인 OST와 조금 다르다
《리키시》의 음악 제작도 흥미롭습니다.
음악 프로듀서는 모테기 히데오와 타테노 노부히로가 맡았고, 음악 제작에는 Grandfunk와 Keynote Sharp가 참여했습니다.
A-bee, 아이다 시게카즈, 이마무라 료타, 이와사키 케이, 노구치 료 등 여러 작곡·편곡자가 참여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특정 주제가 한 곡으로 작품 전체를 기억하게 만드는 드라마라기보다 장면의 압력과 긴장, 선수들의 심리 변화에 음악이 붙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특히 경기 직전의 침묵과 호흡, 발이 바닥을 치는 소리, 몸이 충돌하는 소리가 음악만큼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스모라는 스포츠 자체가 이미 강력한 ‘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 OST 전체 음원을 소개하는 확실한 Netflix 공식 유튜브 링크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Netflix Japan 공식 채널에는 작품의 제작과 배우들의 훈련 과정을 다룬 인터뷰 영상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이치노세 와타루와 피에르 타키가 작품 제작 과정과 신체 훈련, 스모 경기 장면 촬영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본에서는 어떤 반응이었을까
《리키시》는 2023년 5월 4일 세계 공개된 뒤 일본에서 빠르게 주목받았습니다.
Netflix가 2023년 5월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오늘의 시리즈 TOP10’에서 4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세계 5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도 ‘오늘의 시리즈 TOP10’에 진입했습니다.
Netflix 주간 글로벌 TOP10 비영어 시리즈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본에서만 통하는 스모라는 소재가 오히려 해외에서는 낯선 일본 문화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된 셈입니다.

다만 반응이 모두 찬사 일색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일부 평론에서는 실제 프로 스모 세계와 비교했을 때 극적인 과장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엔오의 행동이나 도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부 사건을 현실의 스모계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은 꽤 중요합니다.
《리키시》는 스모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스모를 소재로 만든 극영화적 드라마입니다.
따라서 작품을 통해 스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극중 사건 전체를 실제 스모계의 일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스모는 그렇게 많은 의식을 할까
경기만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모의 준비 과정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소금을 뿌리고, 자세를 잡고, 다시 일어났다가 또 준비합니다.
하지만 스모는 일본에서 단순한 현대 스포츠로만 발전한 종목이 아닙니다.
신토 의례와 연결된 오랜 역사와 전통이 경기 문화 안에 남아 있습니다.
도효 자체도 단순한 원형 경기장이 아닙니다.
선수들이 도효에 오르는 방식과 심판인 교지의 복장, 경기 전 동작 등에도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일본 원제가 ‘Sanctuary, 성역’이라는 사실이 다시 의미를 갖습니다.
엔오는 그 성역 안으로 들어온 이단아입니다.
처음에는 전통을 조롱하고 돈과 성공만 바라보던 인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올라서는 도효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리키시》의 진짜 재미는 스모를 조금 알게 되는 과정
처음에는 엔오의 거친 행동이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하지만 몇 화를 지나고 나면 오히려 주변 인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부상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하는 엔야, 스모를 사랑하지만 신체적인 한계를 가진 시미즈, 괴물 같은 힘 뒤에 어두운 과거를 가진 시즈우치가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드라마는 ‘문제아가 성공하는 스포츠 이야기’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누군가는 재능은 있지만 마음이 없고, 누군가는 마음은 있지만 재능이 부족합니다.
누군가는 정상 가까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합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아주 잔인한 질문입니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가.
《리키시》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남기는 것
엔오는 시즈우치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자신의 힘만 믿고 상대를 조롱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제대로 훈련하기 시작합니다.
스모를 돈벌이로만 바라보던 청년이 처음으로 스모 자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8화에서 다시 대회가 시작됩니다.
엔오 앞에 나타난 상대는 시즈우치입니다.
두 사람이 도효에서 다시 마주합니다.
시청자는 이제 승부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작품은 가장 궁금한 순간에 멈춥니다.
누가 이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다시 싸울 준비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끝냅니다.

이 결말은 《리키시》라는 작품과 꽤 잘 어울립니다.
중요한 것은 엔오가 시즈우치를 이겼느냐가 아니라 처음 도장에 들어왔던 오제 키요시와 마지막 도효에 선 엔오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스모를 몰라도 볼 수 있고, 보고 나면 스모가 궁금해지는 드라마
《리키시》를 보기 전에는 스모를 단순히 ‘상대를 원 밖으로 밀어내는 일본식 씨름’ 정도로 알고 있어도 작품을 보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시작하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왜 소금을 뿌릴까.
왜 저렇게 몸을 크게 만들까.
왜 경기 전에 여러 번 자세를 잡을까.
왜 선수마다 이름이 다를까.
왜 선후배 관계가 저렇게 엄격할까.
상대를 넘어뜨리지 않고 밖으로 밀기만 해도 정말 이기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하나씩 풀리는 과정이 《리키시》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한국의 씨름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제 경기 규칙과 문화는 상당히 다릅니다.
한국 씨름에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과 샅바 싸움에 시선이 집중된다면 스모에서는 도효라는 좁은 공간 자체가 승부의 일부가 됩니다.
원을 몇 센티미터 남겨두고 버티는 순간까지 경기가 계속됩니다.
그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스포츠를 만들어냈습니다.
필름 여행의 마무리
《리키시》는 스모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본 사람만 재미있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모를 잘 모르는 시청자가 볼 때 발견할 것이 더 많은 작품입니다.
한국 씨름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경기 규칙부터 리키시들의 공동생활, 계급, 훈련, 음식, 도효의 의미까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모를 관광용 일본 전통문화의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땀 냄새와 흙먼지, 몸이 부딪치는 소리, 부상, 좌절, 선후배 관계와 욕망까지 상당히 거칠게 보여줍니다.
물론 실제 스모계와 드라마적 과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일본 여행에서 료고쿠 국기관을 바라보는 눈은 이전과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거대한 경기장 한가운데 놓인 작은 원.
그 좁은 도효 안에서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단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거대한 선수들이 충돌합니다.
《리키시》는 바로 그 작은 원 안에 사람의 욕망과 좌절, 계급과 전통, 그리고 성장 이야기를 밀어 넣은 작품이었습니다.
스모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드라마입니다.
작품 개요
한국 제목 : 리키시
일본 원제 : サンクチュアリ -聖域-
영문 제목 : Sanctuary
국가 : 일본
공개 : 2023년
세계 공개일 : 2023년 5월 4일
플랫폼 : Netflix
장르 : 스포츠, 드라마, 성장
회차 : 총 8부작
연출 : 에구치 칸
각본 : 카나자와 토모키
주요 출연 :
이치노세 와타루
소메타니 쇼타
쿠츠나 시오리
타구치 토모로
키타로
마이구마 카츠야
스미 히로키
코유키
피에르 타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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